휩싸인어린

(1)

베토벤은 어릴 때 할아버지를 몹시 숭배하였다. 살아가는 동안 그는‘궁정악단 지휘’였던 할아버지를 잊지 못하였다. 베토벤에 대한 할아버지의영향은몹시깊었다.

두 살 때 베토벤은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흉터가 남았다. 아버지 요한은아들을볼때마다고개를저으면서말하였다.

“이처럼못난자식을내가낳았다니. 이건내탓이아니야. ……하지만괜찮아. 세상의천재들은모두잘생기지않았으니까.”

어머니마리아와할아버지도별로개의치않았다. 그들에게는베토벤이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였다. 더욱이 할아버지는 베토벤을 몹시 사랑했고시간이있으면손자와놀아주었다. 그때할아버지는홀로다락방맞은편의방에있었다. 베토벤은늘다락방에서내려와할아버지가있는방에가서 할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를 듣곤 하였다. 하지만 즐거운 날은 오래가지못하였다.

1773년 크리스마스 날 밤에 자애로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베토벤은아주어렸지만할아버지를똑똑히기억하고있었다. 그뒤로할아버지에대한기억은어릴때나어른이되어서도늘머리에서맴돌았다.

베토벤은 일생동안 할아버지를 모방하였다. 물론 할아버지는 본의 음악계에서가장인기를끌었던인물이었기에당시로서는아주자연스러운일이었다. 베토벤은할아버지처럼‘궁정악단의 지휘’로 되는것이꿈이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숭배로 베토벤은 내심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아버지는 궁정에서 할아버지와 같은 영향력이 없었기에 베토벤에게 아무것도해줄수없었다.

어린시절의베토벤은한동안몹시즐거웠다. 궁정에가면음악으로넘쳤고 악사들은 베토벤을 도와주기 좋아하였다. 집에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가정형편은 갈수록 못해졌다. 아버지는 날마다 술밖에 몰랐고 술을먹으면 곤죽이 되게 취하였다. 어머니는 매일 집에서 바삐 돌아치면서애들에게 음식을 해먹이고 입을 옷을 마련하였다. 어린 베토벤도 이를보면서 어머니의 고생을 알게 되었고 마음속 깊은 곳에 동정과 함께꿋꿋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이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베토벤에게는 어머니가 부지런하고 부드럽고 착한 여자였다. 생활에서나 도덕적으로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귀감이었다. 그녀는 넘치지 않고힘이 미치는 정도로 착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갔고 엄하지도 각박하지도않았다. 아이들은모두그를믿었고어머니의훌륭한품성도아이들에게깊은영향을끼쳤다.

(2)

베토벤에게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이 달랐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아버지에대한거부감이늘기만하였다. 그는술주정을하는아버지가미웠고허풍을떨고잘난체하는아버지가싫었다.

이런상황은베토벤이음악교육을받을나이가될무렵에더심해졌다.베토벤은네댓살에음악을배우기시작하였다. 요한은이를기회로가정에서의지배적지위를세우려고하였다.

사실 그는 천부가 뛰어난 아들에게 진심으로 악기연주를 배워준 것이아니라제멋대로조포한방식으로아들에게음악교육을하였다. 아버지는베토벤에게 엄격했다기보다 잔인하였다. 그는 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베토벤을움에가두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요한은 자신의 지식으로는 아들의 음악교육을 하기에는 벅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여 그는 토비아스 스파이퍼라고부르는배우겸악사를청하였다.

얼마지나지않아스파이퍼는아예요한의술친구로되었다. 당시본에살던첼로연주가뮬러는그때의상황을이렇게묘사하였다.

“스파이퍼는베토벤의아버지와밤열두시까지술을마시고집에돌아왔지요. 집에 와서는 어린 베토벤이 잠을 자는걸 보고 흔들어 깨워서는바이올린을 켜게 했어요. 베토벤은 울면서 피아노 곁에 가서는 날이 샐때까지바이올린을켰지요. 스파이퍼는앉아서이를지켜보고요.”

요한은 왜 베토벤을 학교에 보내 정규적인 교육을 받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당시 베토벤은 학교의 교육방식을몹시거부하고있었고두번이나전학하였다.

나중에 그는 라틴어학교에 전학하였는데 학교에서 배운 라틴어 지식은훗날 그의 창작에 도움이 되었다. 베토벤의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성적도좋았다.

이즈음 요한은 아이들을 엄하게 가르쳤지만 누구나 음악에 뛰어난 재주가있는건아님을깨달았다. 요한이보기에는베토벤의연주만이상당히높은수준에올라있었다.

요한은 아들의 음악재능을 속박하려 하지 않았고 반대로 베토벤의 재능을자랑꺼리로삼았으며심지어돈벌이에이용하였다. 그는늘본에사는음악애호자들을집에초청하여베토벤의연주를보여주었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불쾌한 기억 때문에 베토벤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대해 얘기하기는 것을 꺼려하였다. 설사 얘기하더라도 대충 얼버무렸다.왜냐하면 이런 기억 때문에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명예를 손상하는말은피하였다.

(3)

아버지의 가혹한 가르침과 통제를 받으면서 베토벤은 솟구치는 환상으로자신의천부를보여주었다. 그는늘첼로와건반악기로즉흥연주를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포하게 그의 연주를 중단시키거나 호된 꾸중을하였다.

“그따위 쓸모없는 연주는 왜 하는 거야? 악보대로 연주해야지 그런 연주방법은안된다. 너에게도움이되지않는다.”

한번은베토벤이자신의생각대로연주하자아버지는대뜸호통을쳤다.

“내가너에게일러준말을못들은거냐?”

베토벤은 아버지의 말은 못들은 척하고 더 연주하고 나서 아버지에게말하였다.

“이게얼마나아름다워요?”

하지만아버지는부정하였다.

“아니야. 모두네가되는대로지어낸건데아직은그럴때가아니야!”

아버지의 많은 소행이 반감이 갔으나 베토벤은 역시 효성스러웠다. 그는 늘 두 동생을 데리고 거리에 가서 술에 취한 아버지를 모시러 갔고몰래아버지를집에모시고왔다.

언젠가는 베토벤이 아버지를 잡으려는 경찰을 ‘목숨 걸고’ 막는 걸 본사람이 있었다. 베토벤이 아버지에 대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나쁘다는말을듣기만하면화를버럭내곤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베토벤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애틋한 정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부모는 베토벤의 그런 마음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베토벤은 육친의 따사로움과 사랑에 대한 기대는 포기하였다. 이는 베토벤의불행이었다.

그래도 베토벤의 마음을 꽉 채워줄 수 있은 것은 역시 음악이었다. 악기를 다루노라면 더 없는 만족감을 느꼈고 부족한 육친의 사랑과 정에대한갈망을잊을수있었다.

썩 후에 베토벤은 자신의 학생 칼 체르니에게 말하였다. 그 시기에 그는 자정이 넘도록 ‘연주에만 몰두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완벽한 기교를 추구하면서 장차 시대의 가장 우수한 피아노 연주가로 되기를 희망하였다.

한편 베토벤은 자신의 즉흥 연주능력을 끊임없이 늘여나갔다. 외로울때는 풍부하고 아름다운 마음속의 음악적 상상을 즉흥연주로 발로하곤하였다. 집에서건반악기를연주하는외에도베토벤은밖에나가선생을모시고첼로, 아코디언, 바이올린, 나팔과같은다른악기도배웠다.

철학자 프로이트는 모종 환상에 대하여 ‘가정 로맨스’라고 명명하였다.이런 환상 속에 있을 때 어린이들은 흔히 자기가 숭배하는 인물로 부모를대체한다고하였다. 예를들면영웅, 사회명류, 군주나귀족과같은인물들을 자신의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환상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백일몽(헛된 꿈)과 같이 아주 보편적이지만 창조적 재능이 있는사람들마음속에서는상대적으로더강열하고오래지속되었다.

이런 환상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사라진다고 하지만 베토벤은 오히려나이가들수록더강해졌다. 베토벤은일기에그리스신화에나오는텔레마코스(오디세이의아들)가아테네에게한말을베껴썼다.

저의어머니는그가저의아버지라고했어요.

저도그게사실이아니라는걸알고있지요.

그것은누가그의아버지인지누구도모르니까요.

베토벤의어머니가늘애들앞에서아버지의흉을보았기에이런‘가정로맨스’가 베토벤의 마음속에 나타나기 더 쉽다. 그리고 나이가 듦에 따라 자신은 뛰어난 천부를 갖고 있는데 왜 부모는 저렇게 평범할까 하는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하기에 그는 ‘오데쎄이’에 나오는 의미심장한말을적었다.

아버지와같은아들은실로몹시적다.

대부분자식이아버지를닮지않는다.

아버지를초과하기는더욱어렵다.

베토벤은 자신의 재주가 부모를 훨씬 능가하며 부모보다 훨씬 우수하다는것을발견하였다. 때문에자기의아버지는귀족이나왕실의다른사람이리라고 환상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은 사생아라는 환상까지 하였는데원인은자신의출생연월일에대한환각에서나온것이다.